어제는 이상하게 운이 좋은 날이었어. 잠에서 깼는데 꿈자리부터 아주 좋았거든. ATM기 앞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뚜껑이 열리더니 5만원권이 막 쏟아져 나왔어. 마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그 오만원권을 가질 수 있었어. 기분 좋게 잠에서 깼는데,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크리스마스용 용돈을 받아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방에 갔지. 평소에는 30분도 더 넣어주더니 어제는 5분도 더 주지 않는거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하고 넘겼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아저씨가 급히 불러, 3만원을 손에 쥐어주더니.

 

ㅡ 방금 같이 오셨던 남자분이 돈을 두고 가셨어요.

 

하대.

 

나와서 보니 그 돈은 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에 나간 다른 커플의 돈이었어. 어쨌든, 그 돈은 아저씨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커플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우리는 그냥 그 돈을 얼른 쓰기로 했어.

 

꿈이 들어맞았다고 기뻐하면서 로또를 사고 치킨을 사먹고 맥주를 마셨지. 그리곤 아주 귀여운 강아지가 나오는 영화를 봤어.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은 기쁜마음으로 교회에 갔고, 성탄예배를 드렸지. 설거지로 봉사를 하고, 나와선 왠지 마음이 가뿐해져서 까페에 들어갔어. 커피도 맛있고, 크리스마스는 원래 이렇게 따뜻하고 즐거운 날이니까, 모든 것이 좋았어. 그런데,

 

란, 미안해.

네가 갔어.

근데 내가 거기 없었어.

란, 정말 정말 미안해.

 

거짓말같겠지만, 난 아빠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란이 바꿔주세요'하고 너랑 얼마나 얘기하고 싶었는지 몰라. 너의 털을 만지면서, 네가 핥아주는 부드러운 위안을 느끼면서, 손도 잡고, 어루만지며 얼마나 얘기하고 싶었는지 아니?

 

나는 알아. 넌 아무말도 할 수 없지만 실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미안해.

네가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나라면 알아줬어야 했어.

 

이 소식을 듣고,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돌아와 창문을 다 열고 청소를 했어.

화장실 곳곳을 열어재끼고 닦고 닦고 또 닦았어.

허리가 아파오고 허벅지 근육이 당길 정도로.

하지만 이 아픔 같은 것은 네가 혼자 겪어야 했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지. 내가 나빠.

 

내가 그토록 닦으려 했던 것은 뭘까.

 

나는 네 사진을 열어볼 수가 없었어.

너무 보고싶은데, 만지고 싶고, 부르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아파지고 미안해지고 괴로워질까봐

이런 식의 이별은 너무 무섭고 고통스러워서

외면할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만큼은 유보하고 싶어서

 

그래서 다시 어제 봤던 영화를 틀고 그 강아지를 봤어

너는 거기 없었지

영화 검색창에 리트리버를 치고, 골든을 치고, 강아지를 치고, 골든리트리버를 함께 쳐보고.

 

란,

나는 오늘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어.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었어.

 

ㅡ 그러므로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걸 뜻한다.

 

란,

대한민국엔 아주 많은 개들이 있어. 중국과 일본을 합하면 더 많겠지. 이름을 알 수 없는 개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질 거고 전 우주를 합한다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질거야.

 

란, 너는 1천 65억 마리가 넘는 강아지 중 하나였어.

그런 너는,

내게 아주 특별한 존재야.

 

고구마빵을 좋아하던 너,

상자를 무서워하던 너,

샤워를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하던 너,

뛰어오르기도 좋아하고,

공놀이를 잘하던 너,

하울링을 잘하고,

닭죽을 좋아하던 너,

어두운 것을 싫어하고,

천둥이치면 집에 들여달라고 울던 너,

겁많고,

질투많고,

애교많던 너.

 

지금은 따뜻하고 아픔없는 곳에서 행복할 거라고 믿어.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사랑해, 란. 고맙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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